2002년 6월, 그리고 다시 읽는 최인훈의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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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 보면 불과 6개월 전의 일이다. '이거 우리나라 맞아?'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들이 다르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폴란드와의 경기 때만 해도 길에서 사람들이 서로 마주치면 하이파이브를 하는 정도였다. 어지간해서는 낯선 사람끼리 눈도 마주치지 않는 나라에서 이것만으로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러나 미국, 포르투칼, 이태리, 스페인을 거치면서 길거리 응원에 참가한 사람들의 숫자가 수백만을 헤아렸고, 급기야 우리나라의 구석구석이 붉은 물결로 넘실거리기에 이르렀다. 평소에 인사도 잘 하지 않던 아파트 주민들이 갑자기 백년지기처럼 모여서 전광판 중계를 함께 봤고, 골인 순간 옆에 있던 젊은 아가씨가 자기를 와락 껴안았다며 갑자기 사람 대접을 받은 것 같다는 중년 아저씨들의 고백도 있었다. 사람들은 '이제 우리에게 광장이 돌아왔다'고도 했고, 한편으로는 지나친 민족주의의 발흥이 아닌가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하여간 이전에 경험해본 적이 없는 즐거운 경험이었고, 두고두고 추억거리가 될만한 일이었다.

 

미국 사람들은 '케네디가 저격당했을 때, 우드스탁 컨서트가 열렸을 때, 그리고 아폴로 11호가 달에 내렸을 때 너는 어디서 뭘 하고 있었냐'는 질문을 종종 한다고 들었다. 우리는 앞으로 2002년 6월에 대해 같은 질문을 하게될지 모른다. 대답이야 제각각이겠지만 '혼자 있었다'는 답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적어도 함께 광장에 서 있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를 경험했던 것이다. 그것도 최루탄 가스 매캐한 80년대의 광장이 아닌, 스스로도 믿지 않았던 승리의 기쁨을 맛보는 광장이었다. '거리를 가득 메운'이라는 단어가 새로운 평화적인 의미를 획득하는 순간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지금으로부터 약 40년 전, 그러니까 1960년에 최인훈이 그의 대표작 '광장'에서 던지고 있는 문제와 다시 만난다. 그는 광장과, 그에 대비된 개념으로서의 밀실이 서로 교통할 수 있을 때 인간적인 삶이 가능하리라는 생각을 갖고 이 소설을 썼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지식인 이명준이다. 그는 월북한 아버지로 인해 고초를 겪다가 그 자신도 월북하지만 북쪽의 부자유와 이념적 공허함에 환멸을 느끼게 된다.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으로 종군하다가 포로가 된 그는 석방 당시 제3국행이라는, 당시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선택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그를 태운 인도선적의 타고르 호가 남지나해를 지날 때, 그는 바다에 투신함으로서 밀실도 광장도 아닌 극단적 허무주의를 대안으로 취한다.

 

이 소설에서 명준이 경험한 남북한의 모습은 퍽이나 대조적이다. 남한에는 타락의 밀실만이 있을 뿐이다. 북한에는 분명히 광장이 있지만 그것은 자유와 신념이 결핍된 공허한 광장일 뿐이다. 이러한 비교는 지금도 두 한국의 삶에 대한 우리의 직간접의 경험적 이해와 그리 다르지 않다. 북한에서는 남한 사회를 타락하고 방종한 사회로 규정하며, 그 공간적 배경은 거의 예외 없이 주위와 단절된 밀실이다. 이렇게 살아 온 우리들은 광장에 대한 공포와 콤플렉스가 있다. (이것은 극단적으로 사유영역과 공공영역간의 경계를 강화하려는 우리의 토지이용 방식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래서 우리들의 광장에는 유치함 아니면 고도의 연기력만이 있을 뿐이다.

 

반면 우리는 북한 방송에 나오는 널찍한 광장과 이를 가득 채운 군중들의 집단 사교춤을 보면서 '정말 그렇게 즐거운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분명히 웃고 있지만 모두 같은 표정을 하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어린 학생부터 나이 든 노인에 이르기까지 기계적이고 습관적으로 되뇌는 지도자에 대한 찬양은, 과연 이들과 조용하고 솔직한 대화가 가능할까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 이렇게 남북한의 삶에는 삶의 다양한 공간적 장악, 스케일 조절 기능이 심각하게 마비되어 있다. 결국 광장이나 밀실, 그 극단 중 어느 하나가 아닌, 양자간의 자유로운 소통만이 인간적인 삶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작가의 신념은 본질적으로 당시의 남북한 사회를 모두 부정하는 것이었다.

 

최인훈은 이 소설을 4.19 혁명 직후에 썼으며, 덕분에 자유당 시절의 사상적 검열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2002년 6월의 경험을 통해 우리 사회가 레드 콤플렉스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되는 것과 묘하게 겹쳐지면서, 앞으로 전개될 우리 사회의 모습에 대해 진정한 호기심을 갖게 한다. 당장 정치권은 그들 나름대로의 순발력으로 이 사건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항상 그렇듯이 뻔한 발상의 결과였기 때문에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별다른 호응을 불러일으키고 있지 않는 듯 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시청 앞 광장 조성 공사다. 이것은 상징적 의미의 광장을 물리적 의미의 광장으로 만들어주려는 배려인 것처럼 보인다. 2002년 6월 당시 붉게 물들었던 곳이니 앞으로는 더 쉽고 편하게 모일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얼마나 쉬운 생각인가?

 

그러나 생각해보자. 지금은 없어진 여의도 5.16 광장을 당시 아무도 '광장'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처럼, 관 주도로 새롭게 조성된 시청 앞 광장에 다시는 사람들이 모이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 모인다 해도 이전과 같은 짜릿한 자발성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시청 앞 광장은 비어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2002년 6월의 성지가 될 수 있었다. 광화문 일대와 강남역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곳들의 매력은 평소에는 사람들이 쉽게 모이는 장소가 아니라는 것에 있다. 다시 말해서 지금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그만큼 그 동안 결여되어 있던 광장은 '여기서 모이십시요'라고 만들어진 그런 물리적인 광장이 아니라, 서로의 자발적인 의사에 의해 모여 소통할 수 있는 상징적인 의미의 광장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확장하는 것이 우리에겐 더 중요한 '광장'이다.

 

흥미롭게도 공동체적인 삶의 교감과 새로운 가능성을 읽어내는 노력은 오히려 방송의 오락 프로에서 더 참신하게 제시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미 2002년 6월, 우리의 아파트 단지들은 순간적으로 터져 나오는 함성과 건물 전체를 울리는 발구르기라는 공동체적 교감의 장이 되었던 적이 있다. 중계방송을 보고 있지 않아도 적어도 골이 들어간 순간만은 놓치지 않고 알 수 있었다. 이미 그랬던 기억이 있는 사람들에게 그 다음 단계의 경험은 오히려 쉬운 것인지 모른다. 최근 종종 인구에 회자되는 오락 프로그램의 한 코너에서는 아파트 한 블록 전체 주민이 서로 연락하여 동시에 불을 켜고 끄는 이벤트를 연출하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건 단 한 가구라도 동참하지 않으면 그래픽도 선명하게 그 사실이 건물의 야경을 통해 표현된다. 오와 열이 딱딱 맞는 경직된 한국의 아파트 구조가 이런 놀이에는 적격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이 놀이가 더 발전하면 지금보다 더 발전하여 어떤 도형이나 문자를 그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웃끼리 인사도 하지 않고 지내던 주민들에게 이것은 매우 색다른 경험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2002년 6월에 일어난 또 다른 사건, 즉 미군 궤도차량에 의한 여중생 압사사건을 계기로 지금 우리의 도시에 다시 광장이 생겨나고 있다. 지난 6월의 광장이 단기간에 대규모의 인원이 참여했던 것이라면,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광장은 양상이 좀 다르다. 상대적인 참여 인원은 적지만, 이 광장은 일정한 시간을 두고 반복해서 형성된다는 점을 특징으로 한다. 이렇게 내 나라에서 자유롭게 집회하고 시위할 수 있는 권리, 내 나라에서 누구든지 평화롭게 비판할 수 있는 권리야말로 최인훈의 소설에서 남북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그리고 지금도 부실하고 허약한, 우리들의 '광장'이다.

 

2002년 6월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 변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는 스스로 광장을 만들 수 있다'라는 평범한 사실이 전국민에게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투쟁, 혹은 선전의 무대였던 지금까지의 광장과는 달리, 앞으로의 광장에는 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보다 다양한 이유로 모이게 될 것이다. 이것은 상징적 의미에서 우리 도시들의 공간적 확대이며, 나아가 우리 사회의 의식의 확대이다. 우리에겐 이명준의 허무주의적 선택과는 다른 대안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