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런트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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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에 실런트란 단어를 아느냐 모르느냐가 건축 및 인테리어 관계자인지 아닌지를 구별짓는 잣대가 될만하다. 이 분야 사람치고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거니와, 여기서 한 발자욱만 밖으로 나가면 이를 아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을 듯 하기 때문이다. 실런트는 'sealant'란 영어단어를 소리나는 대로 읽은 것인데, 적당한 우리말은 생각나지 않는다. 아쉬운대로 '(틈새를) 채우거나 막는 물질'정도로 풀어서 설명할 수 있겠다. 실리콘이 주재료이기 때문에 그냥 '실리콘'으로 불리기도 하고, 코킹(caulking)이라는 단어와도 혼용된다. 실런트와 실리콘, 그리고 코킹이란 세 단어가 돌아가면서 사용되는 것이다. 아직도 실런트가 뭔지 잘 모르겠는 분들은 지금 화장실에 가서 거울이나 세면대 주변을 살펴보면 된다. 재질과 연륜에 따라 흰색이거나, 투명하거나, 혹은 누르죽죽하게 변색되어 있을지 모르지만, 재료와 재료의 연결부위에 발라진 다소 말랑말랑한 물질, 그것이 바로 실런트이다.
실런트가 건축 및 인테리어 공사에 기여한 바는 실로 무궁무진하다. 불과 십 몇 년 전만 해도 창들에 유리를 끼울 때는 '빠데'('putty'를 일본식으로 읽은 말)라는 재료를 썼다. 이것은 시간이 자나가면 딱딱하게 굳어서 충격을 가하면 부스러지는 단점이 있었다. 물에 젖으면 또 별 효과가 없어서 이전에는 비가 오면 그리도 창마다 물이 샜었다. 이것이 실런트로 대체되면서 실로 간편하고 확실한 처방이 마련된 셈이었다. 게다가 이 실런트는 실리콘 특유의 접착성마저 있어서, 이것을 적당히 발라 붙이면 웬만해서는 떨어지지 않는다. 이런 여러 가지 장점으로 인해 실런트는 공사현장에 있어서 약방의 감초 같은 존재가 되었다. 외벽에 돌공사를 할 때나, 화장실 거울을 벽에 붙일 때, 실런트는 없어서는 안될 재료이다. 곰팡이나 균의 번식을 억제하는 항균 실런트도 개발되어 화장실이나 수술실의 타일공사에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득이 있으면 실도 있는 법. 만병통치약만 믿고 건강관리를 게을리하면 낭패를 보듯이, 이 만능선수 실런트는 우리나라 건축 및 인테리어 현장의 장인정신을 바닥부터 허물어트리기 시작했다. 이제 더 이상 섬세한 디테일로 재료와 재료의 접합부위를 해결하려 하는 디자이너는 많지 않다. 홈도 파지 않은 밋밋한 창틀에 실런트로 유리를 붙이는 것은 이제 아주 표준적인 공법이 되었다. '백미터 미인'이라고 멀리서 보면 깔끔해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그다지 성의 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적절히 사용하면 될 것을 종종 손가락처럼 굵게 발라버리기도 한다. 사람이 일단 실리콘 쏘는 장비를 손에 잡으면 눈에 보이는 틈이란 틈에는 죄 실리콘을 채우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것 같다. 그래서 섬세한 고급 디자인의 세면대 주위를 실리콘으로 떡칠해 놓는 경우도 종종 있다. 심지어 타일 같은 것도 적당히 붙여놓고 울퉁불퉁한 면에 실리콘을가득 채워서 대강 마무리하는 경우도 흔하다.
이런저런 낭패를 본 이후 아예 실리콘이 필요 없는 디테일만으로 설계를 한 적이 있었다. 시방서에도 그렇게 명기했고, 현장회의에서도 구체적으로 설명을 했으나, 역시 뒤만 돌아서면 누군가가 달려들어 틈이란 틈은 죄다 발라놓아 버린다. 이런 분위기에서라면 열심히 좋은 디테일을 개발하려는 의욕은 모두 물거품이 된다. 아예 현장에 실리콘 반입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유일한 답이 아닌가 자문하는 경우도 있다. 그나마 아직 가구제작에는 실리콘이 별로 사용되고 있지 않는 듯 하나, 이것도 시간문제일지 모른다.
건축이나 인테리어나 전체적인 디자인 못지 않게 디테일과 시공의 질은 기본적으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아무리 좋은 재료를 써도 대충 붙여놓고 실런트로 마무리를 하면 마치 세수 안하고 화장한 것과 같은 착잡한 결과를 낳을 뿐이다. 적당히 사용하는 실런트는 분명 편리한 재료이다. 그리고 그 편리함과 새로운 미감은 분명히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땜질의 도구로 남용하면 해악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나친 실리콘 사용은 장인정신을 해칩니다'가 새로운 구호가 됨직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