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INGS

 

 

 

서평: 손정목 교수의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나는 지난 추석을 이 책과 더불어 보낼 예정이었다. 그래서 추석 연휴 직전 서점에 가서 물경 5권에 달하는 이 방대한 저서를 사가지고 돌아왔다. 그런데 잠깐 첫 장을 넘겼다가 그야말로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결국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도 전에 나는 다시 서점에 가야했다.

 

건축가들은 도시계획에 대해서 애증이 병존하는 감정을 갖게 된다. 소위 국토개발과정의 가장 말단 부위에서 작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일종의 왜소감, 그리고 도시계획이라는 것이 정치, 경제를 포함하는 광범위한 요소들의 혼합체라는 것에서 오는 이질감,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에 오로지 건축적인 가치들로 충만한 도시적 스케일의 작업을 나도 한번 해 보고 싶다는 욕망 등이 교차하는 것이다. 일례로 건축과 학생들의 작품전을 가서보면 사실상 도시계획, 내지는 도시설계에 해당하는 작업들이 자주 눈에 띈다. 그리고 학생이나 선생이나 이것을 아주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기도 하다. 단순히 도시적 관점으로 건축을 바라보고자 하는 시선 못지않게 도시계획, 도시설계 자체에 대한 관심이 건축가들에게 있는 것이다. 그래서 건축가들에게 이 책은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제목이 말하고 있듯이 이 책은 개발시대에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을 역임하고 이후 서울시립대 교수로 재직했던 손정목 교수가 주로 해방 이후 서울의 도시계획 변천사를 서술한 것이다. 손 교수가 서울시에 재직했던 당시야말로 박정희로 대변되는 절대권력과, 이를 등에 업은 속전속결 개발지상주의의 시대였으니만큼 이 책에서 시민의 의견수렴이나 장기간에 걸친 토론, 철저한 사전조사 이런 말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따라서 이 책에는 걷잡을 수 없는 질풍노도의 시절을 거친 사람이 자기의 과거를 향해 던지는 복잡미묘한 시선이 짙게 배어있다. 손 교수는 자신이 주요 등장인물의 하나이기도 한 이 책에서 여러 번에 걸쳐 솔직하게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기도 하고, 또 반대로 자신이 느꼈던 보람에 대해 드러내놓고 이야기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내용 못지않게 손 교수의 내면적 갈등을 탐색하는 것이 또한 흥미로웠음을 고백한다.

 

손 교수의 문체는 드라이하며 감정이 배제되어 있다. 냉정하게 지난날을 돌아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게 나타난다. 독자를 감동시키려고 쓴 책은 아닌 것 같지만, 그러면서도 이 책은 감동적이다. 그리고 그 감동의 대부분은 손교수가 거의 집착에 가까운 열정으로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데이터에서 비롯된다. 손 교수는 자신의 그러함을 이 책에서 여러 번 이야기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책들에서 흔히 보는 ‘모씨’, ‘A군’ 이런 표현을 찾아보기 힘들다. 생존 여부를 막론하고 확인된 대상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실명을 원칙으로 하며, 심지어 깊숙하게 감추어졌던 서신의 내용까지 그대로 인용된다. 결국 현실만큼 극적인 것이 없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서울을 배경으로 한 20세기의 무협지다’에서 시작하여 ‘젊은 나이에 커다란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당시 선배들이 부럽다’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그 저변에 깔려 있는 생각들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대도시 서울의 성장과정에 대한 놀라움이다. 권력자의 개인적 의지가 이렇게 도시 구석구석에 깊숙하게 투사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은 일종의 충격처럼 다가온다. 그 다음으로 갖게 되는 것은 의문이다. ‘과연 그 당시에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나?’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일종의 다짐 같은 것이 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시대는 갔다. 누군가는 명령을 하고 누군가는 이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시대가 더 이상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손에서 놓을 때가 되면 언젠가 나오게 될 이 책의 후편의 내용이 궁금해진다. 절대권력에 의한 개발위주의 시대가 지나갔다면, 그것을 대치할 새로운 모델은 과연 무엇인가? 우리는 과연 어디에서 어떻게 새로운 시대의 도시계획적 패러다임을 찾을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이 책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가장 큰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참고: 손 교수의 책이 서울의 질풍노도적 성장과정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면, 뉴욕에 대해 비슷한 내용을 담은 책인 ‘The Power Broker'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고속도로와 공원의 개발을 필두로 하여 뉴욕 도시계획의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로버트 모시즈(Robert Moses)의 전기로서, 이 저돌적인 인물이 세계적 대도시 뉴욕에 투사한 비전과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한 과정에서의 권력과의 결탁, 그리고 그 결과로서의 몰락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롱아일랜드 고속도로 건립을 위한 토지 수용 과정에서 부자들의 땅을 요리조리 피해가는 대목은 우리의 현실과 교묘하게 겹치는 느낌을 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