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INGS

 

 

 

서평: 손정목 교수의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도시계획! 이 단어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복잡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도 없다. 도시계획으로 자기 집이 잘려나가기도 하고, 보잘 것 없던 땅 앞으로 지하철역이 생기는 바람에 벼락부자가 되기도 한다. 자기가 제안한 내용이 실제로 구현되는 것을 보는 도시계획가의 희열 뒤에는 얼마 되지 않는 보상비를 받고 정든 땅을 떠나야 하는 이주민의 비애가 있다. 인간이 가장 창조주의 권위에 근접하는 일을 하는 것의 하나가 바로 도시계획이 아닌가 한다.

 

역사적으로도 도시계획은 수많은 거대 아이디어의 산실이었다. 역사도시 파리를 고층건물로 재구성하는 계획을 발표한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창작욕은 훗날 인도의 샹디가르에서 그 분출구를 찾았다. 로마는 교회의 영광을 구현하기 위한 수 많은 교황들의 도시계획 실험장이었고, 브라질리아는 허허벌판위에 세워진 순수 기하학적 인공도시였다. 히틀러의 건축가 슈페어는 2차대전에서 승리하는 경우를 대비하여 베를린을 유럽의 수도로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우리에겐 김수근에 의한 여의도 계획안과 지금도 논의되고 있는 행정수도계획이 있다. 그러나 도시계획은 화려한 만큼 비밀도 많다. 여기에는 엄청난 이권이 걸려있으며 정보는 곧 돈이다. 그것은 투명함이나 공정함과는 거리가 있었던 우리나라에서 특히 그러했다. 그 판도라의 상자가 이제 열렸다.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을 역임하고 이후 서울시립대 교수로 재직했던 손정목 교수가 최근 펴낸 책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정확히는 ‘책’이 아니라 ‘책들’이라고 해야 맞다. 물경 5권, 15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저작물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손 교수 자신에게는 직업적 자서전이고, 서울이라는 도시에 있어서는 뼈아픈 성장기의 고백이며, 독자들에게는 삶의 어떤 부분들과 반드시 연결되어 있는 충격적인 기록이다. 이 책을 읽은 사람치고 ‘아, 맞아 그때 거기가 그랬어!’하며 무릎을 한 두 번 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와우 아파트, 청계천 고가도로, 여의도 윤중제, 세운상가, 수서 아파트, 서울대공원, 현대 아파트, 말죽거리, 지하철, 올림픽과 월드컵...... 그야말로 서울이라는 도시의 성장보고서가 만천하에 공개되고 있는 것이다.

 

손 교수는 이 책의 상당 부분에 있어서 일종의 ‘참여적 관찰자’로 등장한다. 그가 서울시에 재직했던 당시는 질풍노도와도 같은 개발의 시대였다. 계획이나 준비, 사전조사 같은 단어는 교과서에서나 존재했다. 그는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면서 수 많은 실패와 성공의 직간접적 참여자가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의 무미건조한 문체 뒤에는 자신에게 대해서도 엄격할 수밖에 없는 냉정한 태도가 깔려있다. 손 교수는 여러 차례에 걸쳐 자신의 과오를 솔직히 인정하고 있으며, 또 반대로 자신이 느꼈던 보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에도 인색하지 않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과 무관하게 저자의 심리를 추적하는 것이 이 책이 주는 또 다른 독서의 즐거움이다.

 

책의 소재로 보아 손 교수는 독자들을 ‘감동’시킬 목적으로 이 책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감동적이며, 그 감동의 대부분은 손 교수가 평생에 걸쳐 거의 집착에 가까운 열정으로 수집한 각종 데이터와 자료의 방대함에 기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철저한 실명제에 기초하고 쓴 책이다. ‘모씨‘, A군'과 같은 표현을 찾아보기 어렵다. 일단 확인된 대상에 대해서는 생존 여부를 막론하고 실명을 사용하고 있으며, 내용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기 위해서는 깊이 감추어 둔 서신까지 원본 내용 그대로 소개된다. 그 밖에 주요한 인물들의 상세한 이력사항, 수많은 통계숫자들, 많지는 않지만 흔히 보기 어려운 사진들이 책의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 책을 통해 ’사실만큼 극적인 것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독자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서울을 배경으로 한 20세기판 무협지다’에서 시작하여 ‘설마설마했는데 이럴 줄은 몰랐다’, ‘젊은 나이에 그런 엄청난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사람들이 부럽다’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그 저변에 깔려있는 생각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놀라움이 있다. 몇몇 권력자들의 개인적 의지와 견해가 이렇게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구석구석에 깊이 투사되어 있음을 깨닫는 것은 충격적이다. 구자춘 시장이 불과 20분 만에 지하철 2호선의 노선을 직접 지도에 그려 발표하게 하는 대목에 이르면 우리의 상식은 일시적으로 마비되고 만다. 그 다음에는 의문이 따른다. 그렇게 무계획적으로 밀어 붙이는 것이 과연 그 당시 최선의 방법이었나 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직도 그 저돌적인 문화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상기하면 이 의문은 매우 아프게 다가온다. 그러나 싸우면서 건설하는 과정에서 수고하고 애썼을 수많은 사람들의 진심 또한 차마 외면할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는 일종의 다짐, 혹은 희망 같은 것이 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시대는 갔다. 누군가는 명령을 하고 누군가는 이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시대가 더 이상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손에서 놓을 때가 되면 언젠가 누군가가 쓸 이 책 후편의 내용이 궁금해진다. 절대권력에 의한 개발위주의 시대가 지나갔다면, 그것을 대치할 새로운 모델은 과연 무엇인가? 우리는 과연 어디에서 어떻게 새로운 시대의 도시계획적 패러다임을 찾을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이 책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가장 큰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손교수는 이에 대해 별 말을 남기고 있지 않다. 그 해답을 제시하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다. 청계천 복원공사가 진행되고 있고 행정수도 이전 문제가 논의되는 지금, 이 책은 그만큼 절실한 의미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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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성장보고서: The Power Broker: Robert Moses and the Fall of New York

 

우리에게 손정목 교수의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가 있다면, 뉴욕에는 Robert Caro가 쓴 ‘The Power Broker'가 있다. 두 책은 서울과 뉴욕이라는 세계적 대도시의 성장과정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으나, 전자는 서울이라는 도시에, 그리고 후자는 로버트 모시즈(Robert Moses)라는 인물에 시각이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 다르다. 그는 과연 누구인가?

 

혹자는 그를 가리켜 미국은 물론이고 아마도 인류역사에서 가장 많은 물량의 건설사업을 주관했던 인물의 하나라고도 한다. 한번도 선거에 의한 공직을 가져본 적이 없으나, 심지어 루즈벨트 대통령마저도 그를 마음대로 다루지 못했다. 그가 가졌던 공식적인 직함은 뉴욕시의 공원국장이었으나 그는 언론과의 유대, 상대에 대한 인신공격에 가까운 협박, 공공에 대한 헌신적 자세, 저돌적인 추진력 등을 바탕으로 엄청난 권력을 누릴 수 있었다. 최대의 정적이었던 넬슨 록펠러에 의해 공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그는 뉴욕과 롱아일랜드 일대의 도시경관을 혁신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는 공이 많았던 만큼 과오도 많이 저질렀다.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오늘날 뉴욕이 갖고 있는 많은 도시문제들에 대한 그의 책임을 묻기도 한다. 고속도로를 계획하면서 부자들의 땅을 교묘히 비껴나가는 도시계획적 개리맨더링이나, 예산도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단 공사부터 시작해 놓고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역으로 공사중단의 책임을 뒤집어씌우려는 장면 등은 마치 손 교수의 책 어딘가의 구절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책은 이 대담한 인물을 미화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쓴 것은 아니다. 오히려 로버트 모시즈의 몰락과정이 이 책에서는 더 중요한 내용이다. 그가 그토록 사랑했고 -적어도 겉으로는- 그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고 믿었던 대중은 결국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는 속으로 대중을 경멸했고 그 자신의 호화로운 사무실에서 황제와 같은 생활을 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서 1959년에서 1968년까지 10년의 기간 동안 점차로 권좌로부터 멀어지는 괴로움을 맛보아야 했다. 그는 왜 대중이 자기에게 고맙게 생각하지 않는지 끝까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Robert A. Caro, The Power Broker: Robert Moses and the Fall of New York, Vintage Books, 1975, New York, 총 1246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