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복에 대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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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진에서나 볼 수 있는 중고등학생 교복은 일본 해군복을 모델로 한 것이었다고 들었다. 남학생 교복의 경우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목주변의 빳빳한 칼라와 이를 잠그기 위한 호크였다. 그 안에는 비닐로 된 속칼라를 덧붙이고 다니게 되어 있었다. 검은색 일변도의 교복에서 유일한 흰색인 이 속칼라가 살짝 목 밖으로 보이는 모습은 단정한 학생의 상징 같은 것이었다.

이 세상 어느 옷도 이 중고생 교복만큼 입는 이로 하여금 변형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은 없었다. 목이 답답하여 호크를 살짝 풀면 멀쩡했던 학생에게서도 당장 은근한 불량기가 풍겼다. (규율이 존재함으로 해서 이탈자가 생긴다. 대부분의 규율은 형식적이며 비생산적이다.) 이 디자인은 목 부분에 대한 그 어떤 추가적인 의복도 허용하지 않았다. 목이 시려 도꾸리라도 입을라치면 호크를 잠글 길이 없어 호크를 푼 채 선도부나 훈육주임의 단속을 각오하고 등교하는 수밖에 없었다. 겁이 많은 학생은 그냥 맨살에 차가운 속칼라의 감촉을 느끼며 겨울을 나야 했다.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교복은 동복이고, 동복은 겨울에 입게 되어 있는 것이니 만큼 이 옷은 그야말로 입는 것이 고문인, 참으로 특이한 디자인을 갖고 있었다. 그 결과 학생들은 무한한 인내심을 갖춘 인간으로 성장했다. 불필요한 곳에 인내가 낭비되고 있었다.

그래도 한창 사춘기, 자기 모습을 찾기 위해 애쓰던 시절이었다. 겉으로는 다 똑 같아 보여도 교복 안의 풍경은 다양했다. 종이 클립으로 하트를 접어 살짝 안에 꼽고 다니는 친구들도 있었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외투를 못 입게 했으므로 안에 껴입는 옷의 숫자는 상상을 초월했다. 추위가 기승을 부리면 모든 학생이 눈사람 같이 땡땡한 모습이 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여학생들은 그 제약 속에서도 무한한 창의력을 발휘하여 개성을 표현했다. 무릎을 기준으로 한 치마 길이를 살짝 변형하여 교복을 상당히 육감적인 의상으로 바꾸는 재주가 그들에겐 있었다. 성속의 경계를 능란하게 넘나드는 그 과정은 디테일에 대한 살아있는 훈련의 과정이 아니었던가. 이제 이 나라에선 아무도 그런 교복을 입지 않는다. 원산지 일본에서는 아직도 일부 학생들이 그런 교복을 입고 어린 시절을 보낸다. 만화영화 세일러 문에서 보듯이 일련의 문화 상품들이 이 교복을 바탕으로 생겨나기도 했다.

제복의 문화는 사실상 세상에 널리 퍼져있다. 적어도 남자들의 신사복은 사실상 제복이나 다름없다. 그것이 아르마니건, 피에르 가르뎅이건, 순모이건, 100% 나이롱이건 전세계적으로 기본적인 포맷은 같은 것이다. 교복을 겨우 벗어나면 잠시 대학교의 자유를 맛보다가 군복을 입게 되고 그 이후에는 이러한 제복을 입고 아침마다 넥타이로 목을 졸라 메는 생활이 대부분의 남자들에게 평생 계속된다. 학창 시절의 교복이 겨울에만 목을 괴롭혔다면 신사복은 사시사철 기도를 구속한다.

형태는 과연 기능을 따라왔던가? 적어도 신사복의 경우 그 대답은 "노."다. 신체에 대한 구속은 물론이고 각 요소별로 보아도 형태는 기능이 아닌 어떤 다른 것을 따르고 있다. 양복 소매에 의례적으로 붙어 있는 3개의 단추는 무엇을 위함인가? 깃에 뚫은 단추 구멍에 단추가 끼워질 날이 있는가? 이것들은 우리 몸의 맹장처럼, 뱀의 다리처럼, 개량 한옥의 딱지 소로처럼 퇴행기관이요 문화적 흔적일 뿐이다.

목을 해방시켜라!

옷을 기능적 요구에 따라 진화하게 하라!

(제복을 미워하지만 잊을 수 없는 어느 30대.)

- 네이비 칼라. 그러나 호크는 없다. 불필요한 깃을 생략한 최소한의 기능성.

- 사람은 개념적으로는 좌우대칭이다. 모든 주머니는 양쪽에 배치. (속주머니 포함.)

- 단추 없는 소매.

- 옷에도 환기는 필요하다. 이곳엔 환기구를 설치한다.

- 허리선 없는 '통짜'옷. 몸을 얽메는 옷이 아닌, 몸에 걸치는 옷으로.

- 지퍼는 단추와 달리 옷깃의 어느 쪽이 앞으로 오나 하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남여 구별은 집요한 면이 있다.) 추우면 머플러를 두르거나 목까지 지퍼를 올린다.

- 활동적인 사람의 주머니는 지퍼를 필요로 한다. 살다보면 정신 없이 뛸 경우도 있다.

- 옷은 천으로 만들고 천은 인장재다! 압축이나 휨이 일어나지 않도록 바지단을 지나치게 길게 하지 않는다.

- 속에는 도꾸리에서 버튼다운 셔츠까지 뭐든지 무방. 그러나 넥타이는 메지 말 것.

일할 때 거추장스럽지 않아 넥타이 대신 해 보고 싶지만 뭔가 시대착오적인 느낌이 든다.

인민복의 카리스마를 당할 옷은 없다.

패션 감각과 설계능력이 무관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

복장으로 보아 그는 궂은 일을 절대 하지 않았음에 틀림없다.

때와 장소에 맞는 패션 감각?

차이니즈 칼라를 유행시킨 장본인. 이발은 집에서 하지 맙시다.

목을 졸리운, 지치고 따분한 '아저씨'들

수백명의 예술가들이 개성의 표현을 위해 검은색을 즐겨 입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