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도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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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냄새맡기

 

나의 도시읽기에는 특별한 방법이 없다. 나는 우선 개가 킁킁거리며 냄새 맡듯이 건물이 들어설 주변을 돌아다닌다. 그리고 그 지역에 대해 구할 수 있는 이런저런 자료들을 구해서 본다. 문헌자료들은 특별한 즐거움을 준다. 어떤 의미에서 사진이나 도면 보다 더 재미있는 것이 이전 사람들이 남긴 글이다. 아무리 정확하고 객관적인 상황묘사라 하지라도 글에는 글쓴이의 주관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서 만들어진 도시와 건축의 이론에 대해 공부하는 것은 모를까, 이를 적용하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나는 모든 좋은 건축가는 기본적으로 동네 건축가라고 생각하며, 여행을 다닐 때마다 그 사실을 확인한다. 그래서 언젠가는 도시와 건축에 대한 우리의 자생적인 이론과 생각들이 많이 나오리라고 믿는다. 그러면 우리나라 건축계가 조금 더 재미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프로젝트를 연애하듯 하는 버릇이 있다. 'Love me, love my dog.'이라는 말도 있듯이 프로젝트의 모든 것에 대해 알고 싶고, 또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싶다. 어떤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그 사람의 사소한 습관에도 관심이 가고, 그 사람이 살아온 과정은 그 어떤 역사책보다도 흥미롭게 마련이다. 대지경계선, 이웃 건물들, 그리고 도로에 매설된 각종 도시하부시설들에 이르기까지 세심하게 들여다본다. 그러나 이렇게 알아낸 것들이 정작 설계에 어떻게 반영될 것인가 하는 합목적적인 생각은 적어도 이 단계에서는 하지 않는다. 그냥 하나라도 아는 것 자체가 재미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해 보면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가지만, 그냥 내가 선택한 삶의 일부이겠거니 하고 생각한다.

 

도시건축적 추리소설

 

일반적으로 이 단계는 분석이라고도 하고 해석이라고도 하지만, 나는 그냥 단순한 분석이 아닌 상상이 개입된 분석을 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토대로 일종의 추리소설을 쓰는 것이다. 왜 골목길이 이렇게 되었을까, 왜 이 대지는 저 대지보다 높을까, 저 멀리 보이는 산은 이 대지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이전 사람들은 여기서 어떻게 살았을까 등등의 생각을 하는 것이다.

 

나는 관찰의 중요성을 물론 인정하지만 역시 해석에 보다 더 큰 의미를 둔다. 열심히 관찰하는 것만으로 좋은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때때로 우리들의생각은 현실을 과감히 뛰어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상상력이 개입해야 한다고 믿는다. 더구나 상상력이 개입하지 않은 관찰과 해석은 역사를 과거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어떤 귀납적인 결과물로 단순하게 인식하게 만든다. '역사의 연장선을 따라' 작업하는 것은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그것만큼 위험한 일도 없다.

 

이 해석의 과정에서는 관찰 때 보다 오히려 더 많은 자료들이 동원된다. 관찰은 발로 뛰면서 하는 것이지만 해석은 그렇지 않다. 서울의 강북 같은 곳이라면 고지도에서 시작하여 항공사진, 항측도, 그리고 중앙정부나 지자체에서 펴내는 각종 자료들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료들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편은 아니다. 이것들은어디까지나 참고용이며 내가 완전히 근거 없는 상상을 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할 뿐이고, 나는 자유롭게 내 머리 속에서 소설을 쓴다.

 

거시적 관점

 

그 다음이 되면 나는 대지와 프로젝트를 좀 더 거시적인 입장에서 바라보고 싶어한다. 예를 들어 대지가 위치한 지역이 도시 전체에서 차지하는 기능이 무엇일까를 보게 된다. 아울러 건물의 기능이나 프로그램이 도시 전체에서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도 생각해 본다. 결과적으로 보면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나아가는 방식인데, 나는 이것이 포괄적 편견의 늪에 빠지지 않는 효과적인 방식인 것 같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나는 종종 서울시의 도시계획도를 들여다본다. 재미있게도 이 도시에서는 강남과 강북의 도시계획 개념이 확연히 다르다. 강북은 양파와 같다. 고밀도 지역을 저밀도 지역이 둘러싸고 있는 형국이다. 강남은 오히려 반대다. 큰길을 따라 고밀도 지역이 있고 저밀도 지역은 그 내부에 들어가 있다. 강북이 면적인 구성이라면 강남은 선적인 구성이다. 내가 작업해야하는 대지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같은 일반주거지역이라 해도 그 거시적 의미는 사뭇 다를 수 있다.   

 

서교동

 

여기 소개하는 해냄 출판사 사옥은 홍대 앞, 보다 정확히는 마포구 서교동 잔다리 길에 위치하고 있다. 알려져 있다시피 서교동 일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소위 부동산 투기 바람이 불었던 곳이다. 나는 이 지역을 조사하면서 그 내용을 내가 운영하는 홈페이지(www.doojinhwang.pe.kr)에 '홍대앞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정리해서 올렸던바가 있다. 그 한 구절을 인용해보자:

 

" 서교동이 서울, 아니 우리나라 근대사에 남긴 흔적은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 혼재되어 있다. 지도를 보면 이 지역은 필지들이 반듯반듯하다. 서울 중심의 삼청동 등과 비교하면 확연히 다른 모습니다. 한 때 서교동, 동교동하면 꽤 고급주택지로 알려져 있기도 했다. 바로 여기가 우리나라에서 부동산 투기 바람이 가장 먼저 분 곳이다. 일제시대만 해도 채소밭으로 덮힌 한적한 구릉지였던 이 일대는 1957년 '서교구획정리사업'이 실시되면서 투기 열풍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당시 채소밭 사이를 수 많은 투기꾼들을 실은 찝차가 오고 갔다고 한다. 그리고 밭 갈던 농부가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된 것이기도 하다. 하여간 이 투기 열풍은 이어 70년대에는 강남으로, 전국곳곳의 공업단지로 불붙듯이 퍼져나갔다......."

 

당시 단독주택 위주의 주거지역으로 개발되었던 서교동 일대는 지금 또 다른 개발의 파도를 맞고 있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기존의 단독주택들이 헐리고 그 자리에 평균 4-6층 정도의 근린생활시설들이 들어서고 있다고 보면 된다. 따라서 이런 지역에서는 대지 바로 옆의 2층 짜리 단독주택이 근미래에 사라질 가능성이 현저히 높다. 오히려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현황'으로 간주하고 설계를 해야 하는 것이다.

 

홍대 앞은 어떤 곳인가?

 

홍대 앞에 대해서는 워낙 많은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내용을 더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나는 홍대 앞은 이대 앞이나 연대 앞 등 신촌의 다른 대학가와는 구별되는 나름대로의 성격이 있다고 믿는다. 외형적으로 이들은 모두 상업적이고 소비적인 성격이라는 점에서 비슷하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대 앞은 문화가 생산되는 곳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알기로 여기에는 을지로와 비교할만한 솜씨 좋은 목공방들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홍대 앞의 지하 카페들은 우리나라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산실과도 같은 곳이다. 여기 출신 중에서는 크라잉 넛, 자우림 등 이미 언더를 벗어난 인물들도 종종 있다. 그러니까 왕년에 인기 있던 가수가 옛 추억을 그리는 손님들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신촌이나 미사리의 다른 카페들과는 성격이 좀 다르다. 홍대 앞에서는 사람이 크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문화적 생산'이란 측면에서 보면 홍대 앞에 유독 출판사, 디자인 사무실,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많은 것은 매우 중요한 도시적 현상이요, 또한 자원이다. 이들이 도시의 일상적인 다른 기능들과 섞여 있으면서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것 또한 흥미롭다. 문화라는 것이 홀로 고귀하게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도시로부터 생명력을 얻고 또 도시에게 그것을 되돌려 주고 있기 때문이다. 왜 다른 대학이 아닌 홍대 주변에 이런 지역이 형성되었을까하는 것은 그 자체로 아주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해냄출판사

 

이 건물은 열린책들에 이어 내가 설계한 두 번째 출판사 사옥이다. 우연히도 두 건축주가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터워, 어찌 보면 순차적인 작업이기도 하다. 그러나 차이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열린책들에서는 길 건너의 경복궁을 비롯, 도시의 장구한 역사라는 것이 중요한 주제로 부각되었는데 반해서, 여기서는 홍대 앞의 활기와 도시적 생명력이라는 것이 놓칠 수 없는 화두였다.

 

더구나 정말 우연히도 건축가 권문성이 바로 이웃 대지에 또 다른 출판사인 열림원의 증축 설계를 하고 있었다. 우리쪽 착공이 예정보다 10개월 정도 지연되지만 않았으면, 비슷한 시기에 나란히 공사를 할 뻔 했다. 가까운 선배 건축가와 서로 이웃하는 건물의 계획안을 놓고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은 아주 즐거운 경험이었다. 우리가 서로를 의식해서 설계를 했다는 말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작은 '출판문화단지'를 도시 한 구석에 만들고 있는 셈이었다.

 

해냄출판사 사옥을 설계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길과 건물이 만나는 부분에 대해서였다. 나는 로비를 거치지 않고 건물의 각층으로 연결될 수 있는 방식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있는데 이것이 각 층의 독립성과 접지성을 높여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열린책들에서는 아예 4개층 전부가 외부 계단으로 지상과 연결되었으나, 여기서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는 관계로 2층까지만 계단이 별도로 설치되었다. 장래의 변화 가능성에 대비, 이 계단은 외부계단이 될 수도 있고, 내부계단이 될 수도 있다. 2층을깊게 파서 상층부와 하층부를 확연하게 구별하려 한 것도 내 나름대로의 도시적 대응방식이다. 이것은 건물의 스케일 조절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전면의 길을 의식한 것이었다. 기둥이 아예 뒤로 후퇴하여 조형적으로도 강한 느낌을 준다.

 

복합용도의 건물

 

내가 생각하는 도시적 건물이란 일단 그 용도에 있어서 복합적인 것이다. 길과의 관계, 경관, 접근성 등에 있어서 어느 층에 놓이느냐에 따라 기능과 프로그램에 있어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주거용 건물이라고 해도 1층에는 무언가 다른 시설이 들어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반대로 상업용 건물의 경우 높이에 따라 선호도가 달라진다. 그래서 이 두 가지 용도를 적절히 섞는 것에 대해 흥미를 느낀다. 다만 층별로 용도가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모호한 경계와 상호 관입이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 관심이 있다.

 

해냄출판사의 경우 비록 주거의 기능이 복합된 건물은 아니지만 -유감스럽게도 아직 이런 기회는 갖지 못하고 있다- 층별 기능은 각각 다르다. 1, 2층은 당연히 외부 손님을 많이 맞는 기능이 들어갈 것이다. 그것은 카페가 될 수도 있고, 상점이 될 수도 있다. 1,2층이 연계되어 사용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3, 4층은 전적으로 임대를 위한 층이다. 5, 6층이 출판사가 사용할 층인데, 전면의 2개층 높이 공간을 통해 서로 연계되어 있으며 독자적인 내부계단을 갖는다. 형태나 재료에 있어서도 건물의 외피와 차이가 있다. '집 속의 집'이라는 개념으로 보면 좋을 것이다. 결국 5, 6층은 제외하고는 층별 용도가 명확하게 설정되어 있지 않는 셈인데 나는 이러한 상황의 모호성과 유동성에 오히려 흥미를 느꼈다. 마치 이동하는 표적을 겨누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건축주를 설득하여 빨리 용도를 정하라고 하기 보다, 이러한 불확정성이 어떻게 설계에 반영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그 결과는 비교적 중성적이면서 설비, 가구배치, 임대구획 등에 있어 여러 다양한 가능성의 수용하는 공간이었다.  

 

그들만의 도시 vs. 우리의 도시

 

우리나라의 도시들에 대해 생각할 때 가장 한탄스러운 것은 그 토지점유방식에 있다. 가장 심한 것이 아파트 단지들이다. 이것은 도대체 도시와 교류하려고 들지 않는다. 몇 개의 출입구만을 설정해 놓고 나머지 지역은 담으로 둘러싸는 것이다. 아파트 블록의 배치가 단조롭고 건물 모양이 조잡하고 등등의 문제들은 오히려 그냥 넘어갈 만 하다. 마치 중세 봉건 영주가 성을 하나씩 꿰차고 있듯 담을 치고 들어선 그 모습이란! 가까운 거리를 갈 때도 아파트 단지를 빙 돌아가야 하는 불편은 앞으로도 갈수록 커질 것이다. 이런 문제가 반사회적인 행위로 규정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다.

 

이렇게 '그들만의 도시'가 늘어나고 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섞여 사는 것의 어려움과 관계 있는 문제이다. 나는 몇 년 전 동호인 주택의 장점에 대해 역설하는 친구와 대판 설전을 벌인 적이 있다. 정 그렇게 함께 살고 싶으면 그냥 어느 동네를 정해서 가까운 거리에 모여 살면 되지, 꼭 몇몇 집들이 자기들끼리 담을 치고 살아야 할 필요가 있는가 라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소위 '침투식 개발'을 이야기한 것이다. 물론 동호인 주택의 장점 중에 경제적인 측면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문제는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건물군이 주로 내부로는 열리고 외부로는 닫히는 구조를 갖는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아니 구조 이전에 그런 생각 자체의 폐쇄적인 속성에 대해 지적하고 싶었다. 지금은 동호인 주택을 넘어서 동호인 도시까지 생겨나고 있는 실정이니, 아마 그 친구가 옳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시 홍대 앞으로

 

그래서 나는 이 홍대 앞의 혼란스럽고 '마구 섞여 있는 듯한' 분위기가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홍대 앞은 건축가 김기석의 우리마당 연작이 있는 곳이다. 한 건축가에 의해 도로변의 세 건물이 연달아 지어졌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이 건물들이 나중에 지어진 것일수록 더욱 도시와의 관계를 중시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유감스럽게도 김기석은 그 이후에 더 이상 도시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홍대 앞에는 아직도 이런 실험의 정신이 살아있다.

 

해냄출판사 사옥은 올 봄 착공 예정이다. 항상 겪는 일이지만 건물이 지어지는 과정은 당혹스럽다. 설계 당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불거져 나오고, '내 판단이 옳았던가'라는 의문은 건물이 완성된 이후에도 집요하게 따라다닌다. 그래서 공사 중에도 동네를 계속 둘러보게 되고, 보이지 않았던 것들 찾아다니게 된다. 도시읽기는 계속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