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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의 시대에 다시 생각해보는 환경 |
웰빙(well-being)
바야흐로 웰빙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웰빙, 우리말로는 '잘 먹고 잘 살기‘ 이외에 딱히 가슴에 와서 닿는 번역이 생각나지 않는다. 한자로 ’편안‘(便安)이란 단어가 떠오르기는 하나 조금 어색하다. 그래서 그냥 영어 발음 그대로를 사용하는 것인지?
언제는 인간이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었을까마는, 따지고 보면 인간은 그리 현명하거나 합리적이거나 이성적이기만 존재들이 아니다. 경제학에서는 인간이 자기의 이익이나 생존을 위해 판단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한다지만 현실적인 인간은 때로는 무모할 정도로 이런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웰빙에 어긋나거나 심지어 정면으로 위배되는 일도 서슴지 않고 한다. 그래서 ‘잘 살기’는 커녕 ‘잘 못 살기’를 지나 심지어 아예 ‘살기를 그만두는’ 단계까지 스스로를 내몬다. 최근 조류독감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치킨집이 텅텅 비고 굴지의 양계업체가 도산하는 것을 보면 사람들은 정말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광우병 소식이 전해올 때마다 갈비집들은 줄초상이 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암으로 썩어 문드러진 폐 사진을 보고 나와서도 담배 한 모금을 빨고, 밤이면 독한 폭탄주를 몸 안으로 쏟아 붓는 일도 마다 않는 이율배반이 엄연히 존재한다. 타살은 원치 않지만 점진적인 자살은 마다하지 않는 것과도 같다. 웰빙에 대한 관심은 이 극단적 모순의 어디쯤 위치하고 있을까?
비록 이 시점에서 상업적인 목적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기는 하나 웰빙의 개념은 그냥 일시적인 유행으로 생각할 문제는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 문제는 중요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며 앞으로 그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는 정수기와 공기청정기 등에 의존하지 않고는 물도 안심하고 마실 수 없으며,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인간의 생존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기본적 요소들마저 그냥 주어지지 않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의사들은 환자의 영양상태 등을 통해 대략적인 사회계층을 읽어낼 수 있다고 하는데, 앞으로는 몸에 쌓인 중금속 및 오염물질의 정도로 이를 알아내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맬더스(Malthus)와 리프킨(Rifkin)
이런 문제에 대한 해답은 간단하지 않다.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이 오래전부터 있어 왔던 서구에서조차도 과연 이것이 정말 인류 멸망의 길로 가는 과정인지, 아니면 일부 식자들의 기우였거나 혹은 적어도 인간이 또 다른 지혜를 동원하여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지 알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예를 들어 맬더스는 그의 유명한 인구이론을 통해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나 식량생산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하여 결국 인류는 식량부족으로 멸망할 것이라는 주장을 편 바 있다. 그러나 지금 식량과 관련된 문제는 적어도 생산의 문제라기보다는 분배의 문제이며, 인구증가의 문제는 식량이 아닌 다른 사회적 비용의 증가라는 차원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의 이론적 예측이 그 메시지의 강도에 비하면 다소 초라한 결과를 맞게 된 셈이다. 한편 ‘엔트로피’의 저자인 제레미 리프킨 같은 사람은 어차피 언젠가 파국은 찾아올 것이지만 우리는 그 속도를 늦출 수 있고 마치 우리 모두가 스스로의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열심히 살아가듯이 인류의 미래 또한 그러한 것이다라는, 위안도 아니고 그렇다고 협박도 아닌 말을 했다. 그가 제시한 새로운 세계의 윤리관, 즉 에너지 유출의 극소화라는 개념은 물질주의에 기초한 고엔트로피가치 체계 대신 그 욕구를 스스로 포기하는 저엔트로피의 가치관을 주창하는 것이었다. 그의 이론이 멜더스의 이론과 비슷한 길을 걷게 될지 아직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 시점에서 그의 생각은 많은 공감을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오늘날 웰빙의 개념에는 그의 이러한 생각들이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처럼 보여 흥미롭다.
동양과 서양
웰빙이란 단어는 영어이면서도 묘하게 동양적인 뉘앙스를 풍기며 다가온다. 이 단어를 들으면 연상되는 이미지는 평화롭고, 색이 은은하며, 약간은 거칠기도 한 것들이다. 러닝머신 보다는 요가가, 강렬한 원색 보다는 무명이나 마의 빛바랜 색이, 매끄러운 유리보다는 결이 있는 창호지가 연상된다. (웬지 남자보다는 여자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 또한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지만 사실이다.) 이러한 이미지들의 공통점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이거나 적어도 가공의 정도가 현저히 낮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들을 만들고 소비하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에너지의 양은 줄어든다. 무엔트로피는 아니지만 적어도 저엔트로피적 가치관을 실천하는 것이다. 리프킨을 다시 인용하자면 파국은 분명히 올 것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지연시키는 방도를 모색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혹자는 서양의 기계문명에 대응하는 동양적 대안으로서 이 문제를 바라보기도 한다. 심지어 동양인의 문명적인 자존심을 회복해주는 계기가 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듯 하다. 그런 시각에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발전이 급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동양 각국에서 과연 이 문제를 얼마나 의지를 가지고 실천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물질문명의 폐해를 누구보다 심각하게 느끼고 사는 것이 바로 동양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환경문제에 대한 서양인들, 구체적으로는 서구 다국적 기업의 음모론 또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웰빙의 가치가 동양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그에 해당하는 단어는 영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사실이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이 문제가 가진 역설을 잘 드러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학과 직관
환경 문제에 대한 심층적인 접근은 쉽지 않다. 이것은 이미 고도로 발달한 학문의 한 분야이며 무엇보다 여러분야간의 지적교류와 협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 문제는 적어도 실천적인 차원에서 일반인들의 다소 직관적이고 상식적인 접근을 허용하는 것이기도 하다. 화학비료에 대한 유기질 비료의 장점이라던가, 천연소재를 이용한 의복, 기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건축물의 설계 등은 누구나 기본적인 원리만 알면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가 복잡해지는 경우는 따로 있다. 예를 들어 태양열의 이용이라는 친환경적인 행위와 태양열 집열판의 생산에서 비롯되는 또 다른 환경오염 및 파괴라는 문제 사이에서의 고민 같은 것이다. 목조 주택이 좋다하여 온 산의 나무를 벨 수 없고, 황토방이 좋다하여 온 땅을 파헤칠 수 없듯이 환경 문제는 복잡한 과학이면서도, 동시에 각 개인의 건전하고 상식적인 판단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능동적 주체가 되어야하는 것이다. ................................................................................................................................
(앞으로 이 연재는 건축과 인테리어에 있어서 환경의 문제를 다각적으로 들여다보고 이야기하는 식으로 진행될 것이다. 우리의 삶이 필요로 하는 매우 기본적인 요소들, 즉 공기, 물, 햇빛 등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이고 역사환경과 문화환경에 대한 이야기까지 많은 주제들이 등장할 것이다. 인간은 매우 복잡한 존재이며 다양한 경로와 차원을 통해 환경과 관계를 맺고 있는 바, 주로 실천적인 측면에서 우리가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우리의 삶에 적용시킬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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